손흥민이 있는 토트넘과 북런던의 영원한 앙숙 아스널의 위대한 감독, 명장 알렉스 퍼거슨의 라이벌이라 부를 수 있는 뛰어난 감독 아르센 뱅거. 그는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아스널FC를 이끌며 1,000경기가 넘는 경기를 이끌었다. 그가 처음 아스널에 왔을 때 잉글랜드에는 외국인 감독은 찾기가 어려웠으며 그 역시 잉글랜드 축구계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1998년과 2002년 두 차례 더블, 3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7번의 FA컵 우승, 2003/04 시즌의 무패 우승, 한번도 지지 않고 리그 우성을 한 것은 그 누구도 이루기 힘든 성과다. 베르캄프, 앙리, 피레스 등이 이끈 공격진과 아담스, 캠벨, 비에이라 등이 포진한 수비진으로 구성된 아스널은 상대를 압도했다.
그라운드의 교수님이라 불리는 뱅거는 어떻게 수십년 동안 외국인 감독으로 축구의 원조라 불리는 잉글랜드 축구계를 이끌어갈 수 있었을까?
그는 공부하는 감독이었다.
뱅거는 ‘인텔리전트 원’이라고 불린다. 그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까지 자유롭게 4개국어를 구사하고 약간의 일본어까지 할 줄 안다, 그는 영리하고 박식하며,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는 이러한 지식과 능력을 한껏 활용했다. 4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이 언어를 쓰는 모든 선수들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고, 경제학 학사의 학위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은행에서 대출 받아 어렵게 짓는 동안 선수들을 현명한 금액에 팔고 영입함으로써 팀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는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심리학에 대해서 공부하며 심리상담가인 데이비드 프리스틀리를 프로 축구 구단에서는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뽑았다. 그는 선수들의 자신감, 정직성, 겸손함 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선수 개인개발 계획을 만들었다. 뱅거는 코칭 능력과 피트니스 관리, 그리고 심리학의 조합을 믿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선수들의 최고의 능력을 끌어내려 했다.
아스널은 2012년 12월 216.5만 파운드를 투자해서 미국 데이터회사 StatDNA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확인하는 과정, 경기 준비, 경기 후 분석, 전술적인 분석을 하기 위해서 진행한 일이었다. 뱅거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득하는 방법도 익혔다. 이를 통해 선수단 뿐만이 아니라 아스널이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내부인들이 객관적인 정보와 데이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의사 소통할 수 있게 했다.
더 나은 훈련 방법을 찾았다.
기존 감독 시절 아스널의 훈련은 세트피스 위주의 훈련을 진행했고, 끝나기 전 소수로 팀을 나눠 미니게임을 갖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이 뱅거와 함께 한 첫 훈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훈련장에 깔려 있는 30개의 매트를 보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했다. 그들은 제자리에 허리를 숙여 손을 발끝에 닿게 했다가 다리를 끌어올려 근육을 풀어주는 등의 스트레칭을 했다. 새 감독이 나타나서 모든 선수들에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무릎을 들어올리고 엉덩이 근육을 풀기위해 다리를 흔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플라이오매트릭 기법도 도입했다. 두 개의 원뿔형 콘 사이에 막대기를 배치하고 선수들이 그 위를 점프해서 넘어가도록 했다. 막대기 사이를 뛰어서 통과하거나, 한발씩 차례로 번갈아가며 벤치에 올랐다 내려오는 운동, 하체 근력을 강화하는 런지 등도 병행했다. 뱅거는 선수들을 많이 움직이게 함으로써 민첩성과 힘을 키웠다. 스톱워치를 손에 들고 초 단위로 빠르고, 정교하고, 세밀하게 훈련을 진행했다. 그는 모든 선수들이 움직이기를, 더 정확하게는 볼을 가지고 ‘함께 움직이기’를 바랬다.
그는 기술적으로 발전하길 원했고 볼을 소유하고 패스하는 훈련에 집중했다. 직선적인 플레이를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움직임을 가져가기 위해 마네킹을 가져와 훈련에 활용했다. 훈련 중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풀백들은 항상 골키퍼로부터 볼을 받을 수 있게 끔 움직이라는 주문을 받았다. 골키퍼 역시 전방의 공격수에게 멀리 볼을 차는 대신 볼을 던지거나 짧게 차서 풀백에게 주도록 했다. 공격 기회를 함부로 날리지 않고, 처음부터 주도해서 경기를 이끌도록 훈련시켰다.
근본적인 에너지원, 식단에서부터 시작했다.
뱅거는 토마토 케첩을 선수들의 식단에서 금지시켰고, 자극적인 음식은 없는 엄격한 식단을 지키도록 했다. 선수들은 모두 함께 식사를 해야 했고, 모든 선수들이 식사를 끝낸 후 에야 식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식단은 온통 닭요리와 쌀 요리 뿐이었다. 오직 금요일 밤에만 파스타가 나왔다.
그는 일본에서 2년을 지냈는데, 일식은 기본적으로 끓인 야채, 생선, 그리고 쌀로 구성되어 있다. 지방도 없고, 설탕도 없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도 거의 없다. 뱅거는 주로 치킨과 익힌 야채를 먹는다. 뱅거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뿐 아니라, 선수들과 같은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선수들에게 존경심을 보여주고 그것이 운영의 핵심 정신이다. 본인이 하지 않는 것을 선수들이 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가 초반 잉글랜드 리그에 왔을 때는 선수들의 음주가 문제였다. 경기나 훈련이 끝나고 나면 선수들은 펍으로 몰려나가 엄청 술을 마시고는 했다. 밤새 술을 마신 선수들이 체력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선수들에게 먹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저절로 몸에 안 좋은 것은 피하도록 만들어갔다.
일대일 대화로 마음을 맞춰 나갔다.
부임 초기에 그는 팀 내 주요선수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토니 아담스, 폴 머슨 등과 훈련장을 걸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두 선수는 당시 음주 문제로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뱅거는 선수들과 오래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그것은 훈련장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그는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해서 전화를 하면 언제든 흔쾌히 전화에 답을 한다. 아주 터무니없는 이야기만 아니라면 기꺼이 돕겠다고 나선다.
그는 모든 것에 신경을 쓰는 감독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도 그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만약 4-4-2 포지션으로 뛰고 있을 때 포지션에 대한 의구심이 들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물어보면 그는 선수에게 최고의 조언을 해준다. 축구 이외의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생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이것에 대해 좀 물어봐도 될까요?’라고 물어보면 그는 유심히 듣는다.
선수들이 인상 깊어 했던 것은 선수를 만나기전 항상 먼저 알아보고 왔다는 점이다. 마치 선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선수들을 속속들이 파악함으로써 개개인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입장을 선점했다. 뱅거는 단지 선수들로 하여금 그라운드 위에서 더 잘 뛰게 하는 축구 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축구 이외의 것에 대해서도 해박한 사람이며 그의 지도를 받는 것은 마치 세계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선수의 재능을 파악하고,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선수들조차도 잘 모르는 잠재력을 꿰뚫어보고 그에게 기회를 주면서 능력을 발전시켰다. 그는 선수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감독이다. 선수들이 각자의 개성을 갖길 원하고 선수들에게 집에 가서 상대방에 대해 연구를 바라거나 어떤 장면을 전술적으로 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선수들이 원하는 것을 하길 원하고, 선수들의 생각을 스스로 표현하길 원한다.
그는 하프타임이나 경기 종료 후에 선수들끼리 논쟁을 벌이면 그 사이에 끼어들지 않고 내버려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맞아, 바로 그렇게 해야 되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건 마치 그가 수업에서 칠판 앞에 서서 선수들이 뭐라고 하는지 적고, 그걸 바탕으로 생각을 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도출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선수들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선수들끼리 직접 말을 하게 하고, 그 말들 중에 필요한 것을 집어내었다.
뱅거는 결코 경기에서 화를 내고 펄쩍 뛰는 감독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 선수들이 침착하게 상황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늘 비디오를 돌려보고 주말에 두 번, 세 번 그 상황을 돌아본 후에 월요일 아침에 와서는 ‘무엇이 잘못된 걸까?’라고 선수들에게 묻곤 했다. 그는 항상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요구했다. 예를 들어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라고 말하고는 선수들에게 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선수들은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찾아보고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선수들이 직접 경기 중에 발생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의견을 내길 원했다.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훌륭한 재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계약 연장을 하며, 전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게 했다. 이러한 뱅거를 위해 선수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해내고, 믿음에 보답하고, 충성하여, 우승을 만들어낸다. 그도 자신의 선수들에게 매우 충실하다. 선수들도 그의 그런 태도에 응답한 것이다. 이는 그의 철학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뱅거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그는 천재적인 사업가 혹은 영업사원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늘 비즈니스와 축구를 운영하는 것의 유사성에 관심을 가졌다. 축구계에서는 선수가 큰 이익을 남기고 팀을 떠날 때 떠나보내는 클럽은 야심이 부족한 클럽으로 그를 판 감독은 팬들을 배신하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선수를 내보낸 후에도 어리고, 이름 없는 재능 있는 선수를 데려와 스타로 만들고, 팬들이 원하는 승리를 가져왔다. 물론 욕은 먹었지만, 그래도 경기장을 지으면서 어쩔 수 없는 재정적 위기를 잘 넘겼다. 그는 감독이지만 선수들에게도 성공의 보상을 가져다 주었고, 구단에게는 승리를 바탕으로 이익과 재무적 상황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아스널의 문화를 바꾸었다.
축구팀 마법의 공식은 재미있는 축구와 승리는 동시에 달성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무리뉴 같은 감독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긴다’는 철학 아래 팀을 구성하고 그 위에 재능 있는 선수들을 더한다. 뱅거는 ‘즐거운 축구’를 구사한다는 원칙을 먼저 분명히 한 후에 어떻게 하면 이길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는 축구는 골을 넣고, 기회를 만들어내고, 기술을 기본으로 팀을 만든다. 뱅거는 승리하는 것과 매력적인 스타일을 지키는 것을 같은 수준의 중요성으로 생각하는 감독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매력적인 축구, 스타일 있게 이기는 축구를 구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스널 선수들이 이미 갖고 있는 장점들, 팀 스피릿, 단결력, 강인함을 활용해서 아스널에 성공을 가져오고 싶어했다. 뱅거는 그가 물려받은 팀의 분위기가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했고, 선수들이 창의적으로 플레이하되 마음 속에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면서 움직이길 원했다.
그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열려 있었다.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뛰어난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가 잘 아는 프랑스 선수들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로 그 범위를 넓혀 나갔다. 이로써 아스널 드레싱룸은 다국적의 선수들이 모여든 다문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뱅거는 영리하게 선수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단결을 잃지 않도록 리드했다.
그가 말하는 최고의 순간은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하는 순간이며 최악의 순간은 모든 패배하는 순간이라 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모든 패배를 죽음과 같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려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려 하고, 기존의 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려고 했던 감독, 선수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성장시키려고 했던 감독. 우리는 그를 ‘그라운드의 교수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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